AI는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발전 속에서도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한 가지 확신이 있다 AI는 인간의 ‘직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이 글에서는 데이터와 계산의 세계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직관의 본질을 살펴보고 그것이 왜 인공지능에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남아 있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1. 직관이란 무엇인가 논리를 초월한 사고의 비밀
'느낌이 그렇다. 혹은 왠지 그게 맞을 것 같아.' 우리는 종종 아무런 명확한 근거나 수치 없이도 어떤 결정을 내리곤 한다. 이처럼 명시적인 사고 과정 없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판단을 우리는 ‘직관’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직관을 사용할까? 그리고 그 직관은 왜 AI에게 넘기 어려운 벽이 되는 걸까?
직관은 흔히 논리적 사고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소개된다. 논리는 근거, 연역,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사고 과정이라면 직관은 그 모든 단계를 생략하고도 정답에 도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체스의 고수는 수백 수를 계산하지 않고도 한눈에 가장 유리한 수를 느낀다. 과학자는 복잡한 공식 없이도 어떤 실험의 방향이 옳다고 감지한다. 심지어 예술가는 아무 계획도 없이 붓을 들고도 걸작을 완성한다. 이 모든 것은 직관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인간의 독특한 사고 형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직관이 전적으로 감정이나 본능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축적된 경험과 패턴 인식의 결과라고 말한다. 인간은 수년 혹은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수많은 케이스를 내면화하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도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그래서 직관은 결코 비논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논리를 뛰어넘는 초고속의 사고 시스템이며 때로는 논리보다 더 정확한 결정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AI도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직관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AI는 무수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패턴을 인식하며 예측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AI는 느낌이 없다. 인간의 직관은 단지 경험의 총합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감각과 정서 뉘앙스의 산물이기도 하다. 즉 인간의 직관은 생리적, 감정적, 문화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사고이며 이는 수치와 알고리즘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의 직관은 종종 논리를 배반하면서도 정확하다. AI는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알고리즘은 예외를 다루기 어렵다. 반면 인간은 모순된 상황에서도 감각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놀랍도록 정확할 때가 많다.
결국 직관은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AI가 아직 넘지 못한 결정적인 장벽이다. 그것은 수많은 데이터와 계산을 넘어서 삶을 살아낸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이기 때문이다.
2. 인공지능의 직관 모방 실험 왜 ‘느낌’까지 계산할 수는 없는가
최근 AI 연구자들은 인간의 직관을 모방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강화학습, 메타러닝, 신경망 기반의 패턴 예측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제로’는 수천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체스나 바둑 같은 복잡한 게임에서 인간 고수를 능가하는 실력을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AI의 직관’이라 표현했지만 과연 그것은 진짜 직관일까?
AlphaZero의 사고 방식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빠르게 평가하고 각 수의 승률을 계산해 최적의 선택을 반복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직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게 많은 연산을 통한 확률 최적화에 불과하다. 인간은 그렇게 수천만 가지를 계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매우 적은 정보와 시간 안에 빠른 결정을 내린다. AI가 보여주는 결과가 인간의 직관과 비슷해 보일 뿐, 그것이 실제 직관이라는 증거는 없다.
또한 AI는 직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 의미를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문학 작품에서 인간은 단어의 배열만이 아니라 문맥, 역사적 배경, 감정, 문화적 코드 등 수많은 요소를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반면 AI는 토큰의 확률을 계산해 단어를 이어 붙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시로 느껴지는 문장이 AI에게는 단순한 문자열일 뿐이다. 느끼지 못하는 존재는 진짜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한계는 감정이 개입되는 상황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의사결정에 있어 인간은 종종 비합리적이지만 그 비합리성은 현실에서 중요한 변수다. 인간은 슬픔, 기대, 걱정, 희망 등 다양한 감정에 따라 결정을 바꾼다. 그러나 AI는 이를 ‘변수’로 처리할 수 있을 뿐 실제로 ‘감정적 직관’을 경험하지 않는다.
더불어 인간의 직관은 종종 오류조차 창조성의 계기가 된다. 직관은 실수할 수 있으며 그 실수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경우도 있다. 반면 AI는 오류를 최소화하려고 설계되며 그 안에서 창조적 돌파를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직관은 실패와 감정 우연성이라는 비논리적 요소들이 맞물려 생기는 복잡한 사고 과정이며 이는 알고리즘적으로 모사하기 매우 어렵다.
이처럼 AI가 직관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경험하거나 내면화하지는 못한다. 그 벽은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존재론적 한계에 가깝다. AI는 계산할 수 있지만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직관은 결국 느끼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3. 인간의 직관은 진화하는가 기계가 닿을 수 없는 사고의 미래
지금까지는 인간의 직관과 AI의 차이를 중심으로 논의했지만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직관은 고정된 능력일까 아니면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가? 더 나아가 인간은 직관을 통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
인간의 직관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작동해왔다. 농경 사회의 사람들과 현대 도시인의 직관은 전혀 다른 형태를 띤다. 농부는 하늘의 구름을 보고 비를 예측하고 도시인은 교통 체증을 느낌으로 피해간다. 기술과 환경이 바뀔수록 직관이 작동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의 직관이 단순히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성질을 지녔다는 의미다.
이 점에서 직관은 인간의 가장 유연하고 적응력 있는 능력 중 하나다. 그리고 바로 이 유연성 때문에 AI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것이다. AI는 주어진 목적과 알고리즘에 의해 최적화를 추구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하고 모순된 환경에서도 느낌으로 적응한다. AI는 정확한 규칙 속에서 강하지만 규칙이 바뀌는 상황 맥락이 혼란스러운 환경에서는 여전히 취약하다.
또한 인간의 직관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강화된다. 우리는 타인의 표정, 눈빛, 말투, 분위기에서 수많은 신호를 의식하지 않고도 읽어낸다. 이것은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정서적 공명, 관계적 직관이다. 사회적 맥락과 감정을 함께 고려하는 사고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은 직관을 통해 오히려 AI의 한계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AI가 제공하는 수많은 데이터와 결과물 중 어떤 것을 신뢰할 것인가? 어떤 것을 경계할 것인가? 그 판단은 때때로 직관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직관이 기술을 넘어서 인간성을 지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미래는 인간과 AI의 협업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그 협업의 핵심은 인간이 가진 직관이라는 비논리적 능력의 존중에 있다. AI는 수많은 것을 계산할 수 있지만 어쩐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그 한 줄의 감각은 여전히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이다.
직관은 인간 사고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신비다. 그것은 비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삶의 감각, 경험의 무게, 감정의 여운은 어떤 데이터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AI가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