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전 바위에 새겨진 낯선 기호들과 점토판에 남겨진 미지의 문자들.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이 ‘잊혀진 언어들’을 해독하려 애썼지만 여전히 많은 고대 문자는 우리에게 침묵한 채 남아 있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AI)이 이 고대의 침묵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AI는 인간이 놓친 패턴을 읽고 사라진 문명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오고 있다. 설형문자부터 마야 상형문자까지 AI는 어떻게 고대 언어를 해석하고 그로부터 어떤 놀라운 이야기들을 밝혀내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인공지능이 고대 문명의 비밀을 풀어가는 여정을 함께 따라가본다.
1. 고대 문명과 언어의 미스터리 왜 아직도 해독되지 않았을까?
인류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문명을 거치며 언어와 문자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독되지 않은 고대 언어들이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마야 문명, 인더스 문명, 이스터섬의 롱고롱고 문자 등이다. 이들은 현존하는 자료가 제한적이며 번역을 위한 ‘로제타 스톤’ 같은 중간 매개체가 부족해 해독에 큰 난관이 따랐다.
고대 문자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언어를 아는 것 이상의 작업이 필요하다. 언어는 단어와 문법뿐 아니라 당대의 문화, 사회 구조, 종교, 정치 체계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형문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사용된 문자로 약 5천 년 전부터 수천 년간 사용되었으며 점토판에 새긴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같은 설형문자가 시기와 지역에 따라 의미가 다르고 때로는 상형문자처럼 시각적 상징을 담고 있어 해석이 어렵다. 일부 문자는 동일한 기호가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어 문맥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정확한 번역이 어렵다.
또한 고대 문자 해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잃어버린 문화적 맥락이다. 예를 들어 마야 문명의 상형문자는 천문학, 제사, 전쟁, 신화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현대인이 직접적으로 체험하거나 공유할 수 없는 의미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즉, 마야인의 사고방식이나 신화 체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문자를 해독하더라도 표면적인 의미만 파악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인간 언어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이런 문자들을 분석하며 의미를 유추해왔지만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과정은 매우 느리고 제한적이었다. 고대 문헌의 파편성과 손상, 표본의 희소성, 언어 간 유사성의 부족 등이 문제로 작용했고 이로 인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문자가 ‘읽히지 않는 언어’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최근 부상한 것이 인공지능 기술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패턴을 추출하는 데 탁월하며 인간이 간과한 규칙성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AI의 도움으로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고대 언어의 구조와 패턴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 과연 AI는 어떻게 이런 고대 문자를 읽어내는 걸까?
2. AI가 고대 문자를 읽는 방법 알고리즘이 발견한 패턴의 언어
AI가 고대 문자를 해독한다는 개념은 처음 들으면 마치 공상과학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오늘날의 딥러닝과 자연어처리(NLP) 기술은 언어의 통계적 패턴을 학습해 구조를 이해하고 번역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Google DeepMind, MIT, 알렌 인공지능 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이 이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AI 기반 언어 해독의 핵심은 ‘지도학습’과 ‘비지도학습’이다. 지도학습은 정답(예: 번역된 고대어)이 포함된 데이터를 AI에게 제공해 학습시키는 방식이고 비지도학습은 정답 없이 AI가 자체적으로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고대 언어는 번역본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비지도학습 기반으로 진행된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2019년 MIT와 Google Brain 팀이 진행한 연구다. 이들은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고대 노르딕어 등의 텍스트 데이터를 수집하여 언어 간의 ‘의미 벡터 공간’을 비교 분석했다. 이 연구에서 AI는 인간처럼 언어 간 공통된 의미의 구조를 인식하고 단어 간의 상호 관계를 벡터(수학적 거리)로 표현해 번역 가능한 패턴을 찾아냈다. 이 기술은 이후 바빌로니아 설형문자 해석과 마야 문자 분석 등에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또한 최근에는 컴퓨터 비전과 결합된 AI 기술이 등장하면서 단순히 텍스트 데이터뿐 아니라 이미지 기반 문자 해석도 가능해졌다. 마야 문자나 이스터섬의 롱고롱고 같은 경우는 상형적 이미지로 되어 있어 기존 NLP 기술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했으나, CNN(합성곱 신경망) 기반 이미지 인식 모델이 문자의 시각적 패턴을 학습함으로써 고대 문자의 구조적 반복성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AI 모델은 인간의 직관과는 다르게 전혀 문화적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수천 개의 문자를 비교하며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문자가 반복적으로 특정 기호와 함께 등장하거나 특정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를 AI는 매우 빠르게 포착해내고 이를 토대로 가설적 문법 구조를 제시할 수 있다.
물론 한계도 존재한다. AI는 의미의 뉘앙스나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 기반의 예측을 수행할 뿐이다. 그래서 AI가 제시한 번역이 반드시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AI가 도출한 패턴은 고고학자나 언어학자가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AI와 인간의 협업을 통해 고대 문자의 해독 속도는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3.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 AI가 밝혀낸 고대 세계의 새로운 단서
AI의 참여로 인해 우리는 단순히 문자 해독 이상의 것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AI가 분석한 고대 문서 중에는 그동안 오해되거나 간과되었던 역사적 단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AI가 번역한 설형문자 기록 중에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적 지식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교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었다. 이는 그들이 단순한 점성술 수준이 아닌 행성 주기와 일식·월식을 예측하는 수학적 모델을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또한 마야 문자의 AI 분석 결과 중에는 특정 의식과 종교적 상징이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마야 문명이 단일한 통치 체계가 아니라 지역별로 다양한 정치적 구조와 종교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단서였다. 이런 발견은 기존에 통용되던 ‘중앙집권적 제국’ 모델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사례로는 AI가 번역한 이스터섬의 롱고롱고 문자 조각에서 발견된 내용이 있다. 이 문자들은 그동안 아무 의미 없는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AI는 특정 패턴이 계절 변화나 해양 활동과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이스터섬 주민들이 환경과 자연 현상을 정교하게 기록한 증거일 수 있으며 해당 문명이 생태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힌트가 된다.
이처럼 AI는 기존 인류학적 해석을 넘어서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대인은 단순한 미신적 존재가 아니라 그 나름의 논리와 과학, 기록 체계를 갖춘 고도의 문명인이었다는 사실이 AI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AI를 통해 인류의 지적 역사 즉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고대 언어 해독은 단순한 학술적 도전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지금 AI는 3천 년의 시간 너머에 잠들어 있던 목소리를 다시 깨우고 있다.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 오래된 문명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